大佛은 奈良의 상징이며 , 그 大佛을 모시고 있는 곳이 東大寺 ( 토오다이지 ) 의 金堂=大佛 殿 입니다 .
불심깊은 聖武天皇 ( 쇼무천황 ) 은 부처의 자비로 정치불안을 해소해보고자 나라별로 國分寺를 건설하였으며 , 743 년에는 盧 舎 那 仏 의 제작을 명하고 전 국민에게도 이를 돕도록 호소하였습니다 . 이에 行基 ( 교키 ) 스님도 제자들을 거느리고 협력하였습니다 . 7 년 후인 749 년에는 대불이 완성되고 , 이어서 대불전도 완성되어 752 년에 개안공양 법회가 행하여졌습니다 . 공사는 그 후로도 이어졌지만 東大寺 ( 토오다이지 ) 건립은 나라의 총력을 기울인 대사업이었으며 , 그 가람 ( 절의 건축물 ) 은 전례없이 장대한 것이었습니다 . 남대문의 정면에는 중문과 회랑을 배치하여 대불전을 에워싸고 , 그 전방좌우에 7 층의 동탑과 서탑이 서있었습니다 . 대불전 뒤에는 승방에 둘러 쌓인 강당이 있었으며 , 동쪽에는 식당을 배치하였습니다 . 동쪽의 산에는 法華堂 ( 홋케도 ), 二月堂 ( 니가쯔도 ), 서쪽에는 戒壇院 ( 카이단인 ), 서북쪽에는 正倉院 ( 쇼소인 ) 이 있었습니다 . 동쪽을 제외한 서쪽 , 남쪽 , 북쪽을 토담으로 에워싸고 , 남쪽과 서쪽에는 3 개의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. 남쪽중앙이 南大門 , 서쪽 중에서도 가장 북쪽의 문이 転 害門 입니다 .
平安 ( 헤이안 ) 시대 이후에도 전국사원의 총본산으로써 세력을 유지하였으나 , 1180 년 平氏 ( 헤이시 , 타이라성을 가진 씨족 ) 의 공격으로 대불과 함께 대불전이 불타고 正倉院 , 法華堂 , 鐘 楼 , 転 害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堂塔 또한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. 그 후 重源 ( 쵸겐 , 鎌倉 ( 카마쿠라 ) 초기의 정토승 ) 을 중심으로 부흥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. 송나라 공인 陳和卿 ( 친나케 ) 의 협력으로 1185 년 대불을 복원하고 송나라로부터 大佛 様 이라는 새로운 건축양식을 들여와 95 년에 대불전을 재건하였습니다 . 4 년 후에 완성된 남대문은 이 大佛 様 을 지금까지 전해주고 있습니다 . 1200 년에 새로이 開山堂 ( 카이산도 ) 가 세워지고 , 수년 후 종루가 호쾌한 구조로 새로 지어졌습니다 . 한편 法華堂은 남쪽의 예당을 大佛 様 으로 다시 세워 正堂으로 연결하여 균형잡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하였습니다 . 오미즈토리 ( お 水取 り ) 로 유명한 二月堂 ( 니가쯔도 ) 는 1667 년에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고 2 년 후 재건되었습니다 .
1567 년 , 松永久秀 ( 마쯔나가 히사히데 ) 와 三好三人衆 ( 미요시산닌슈 ) 와의 전쟁으로 인해 대불전과 戒壇院을 비롯한 수많은 건물들이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. 그 후 스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건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다가 1684 년 막부의 허가로 公慶 ( 코케 ) 에 의한 부흥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. 1692 년에 대불이 복원되고 1709 년에는 대불전도 재건되었습니다 . 奈良시민들도 大佛 講 을 만들어 시주하였습니다 . 그러나 대불전의 재건은 막부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경비가 충분하지 않아 창건 당시보다는 규모가 작아졌습니다 . 대불전의 정면 폭이 27m 정도 좁아지게 되었으나 그래도 세계제일의 목조건축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. 明治 ( 메이지 ) 시대 초기에는 지붕이 기울어지는 등의 심한 손상으로 인해 다시금 대대적인 수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, 明治 ( 메이지 ) 시대가 막을 내린 1909 년이 되어서야 공사에 착수하여 1913 년에 준공되었습니다 . 昭和 ( 쇼와 ) 시대에는 南大門이나 転 害門 등의 수리도 이루어졌으며 , 1978 년에는 대불전지붕의 기와 11 만장을 새로 바꾸는 공사가 완공되었습니다 .
近 鉄 奈良 駅 ( 킨테츠 나라역 ) 에서 도보 15 분